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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장자의 죽음에 대한 자세와 막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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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자의 죽음

 

장자의 죽음에 대한 자세는 죽음 또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이치이니 자연스러운 순리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아래의 장자의 이야기를 좀 더 확대해서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1. 막야 이야기

 

쇠붙이가 막야(대장군의 명검을 일컬음) 가 되겠다고 한다는 것은 조화자의 뜻과 불일치 되고 이러한 것은 불행으로 이어집니다.

 

조화자와 쇠붙이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간에 바라보는 곳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계속 자신의 뜻을 들어달라고 해보았자 자신의 불행만 깊어 질 뿐입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않는 다고 힘들어 할 필요없이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구나 하고 생각하고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이 잠시 자신의 뜻대로 되어간다고 자만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않아도 낙담하지 말고 뜻대로 되어 자만하여 내 밷는 말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 오십에 읽는 장자 중 (김범준) ]

대자연은 肉體를 주어 나를 이 세상에 살게 하며, 삶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며, 늙음으로 나를 편안하게 해주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한다. 그 때문에 나의 삶을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것은 바로 나의 죽음을 좋은 것으로 여기기 위한 것이다.

지금 대장장이가 쇠붙이를 녹여서 주물을 만드는데, 쇠붙이가 뛰어 올라와 ‘나는 장차 반드시 막야와 같은 名劍이 되겠다’고 말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쇠붙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제 한 번 인간의 형체를 훔쳐서 세상에 태어나 “나는 언제까지나 오직 사람으로만 살겠다.”고 말한다면, 저 造化者도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니, 지금 한 번 천지를 커다란 용광로로 삼고, 조화를 대장장이로 삼았으니, 어디로 가서 무엇이 된들 좋지 않겠는가? 편안히 잠들었다가 화들짝 깨어날 것이다.

2 장자의 죽음에 대한 자세

갑자기 자래(子來)가 병이 났다. 숨을 헐떡거리며 죽을 것 같았다. 그 처자가 둘러앉아 울고 있었다. 자리(子犁)가 위문을 가서 말했다.

“쯧쯧. 비켜나라! 조화(造化)를 놀라게 하지 말라!”

문에 기대어 자래와 얘기를 했다.

“위대하도다, 조화여! 또 장차 너를 무엇으로 만들려 하는가? 장차 너를 어디로 보내려 하는가? 너를 쥐의 간(肝)으로 만들려는가? 너를 벌레의 팔로 만들려는가?”

자래가 말했다.

“자식은 부모에 대해서 동서남북 어디라도 다만 그 명을 따를 뿐이다. 사람이 음양(陰陽)의 이치에 순응함은 부모에 대한 것 이상이다. 조화가 내게 죽음을 명했는데 내가 듣지 않는다면, 이는 내가 억지로 막는 것이다. 조화가 무슨 죄가 있는가? 무릇 대지(大地)는 형체를 주어 나를 싣고, 生을 주어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을 주어 나를 편안케 하고, 죽음을 주어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내 生을 기뻐한다면 곧 내 죽음도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이제 대장장이가 쇠를 주조하는데, 쇠가 뛰어오르면서 ‘나는 반드시 막야(鏌鎁)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대장장이는 반드시 그것을 상서롭지 못한 쇠라고 여길 것이다. 이제 우연히 사람의 형체를 지녔던 것인데, ‘사람이다. 사람이다.’라고 말한다면 저 조화자(造化者)가 반드시 상서롭지 못한 인간이라고 여길 것이다. 이제 천지를 큰 용광로로 생각하고 조화자를 대장장이로 생각한다면, 어디를 간들 옳지 않을 것인가? 문득 잠들고 문득 깨어날 뿐이다.” -대종사(大宗師)

조화자는 조물주로서 삼라만상 변화의 근원이다, 조화자를 대장장이에 비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의지를 지닌 인격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법칙의 작용을 말한다. 우리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으며, 죽음 또한 선택할 수 없다. 영겁의 변화 속에서 다만 주어진 순간의 삶을 살게 되어 있다. 그것은 벗어날 수도 없고 벗어나려 해서도 안 된다.

장자의 사상은 결코 운명론이 아니다. 그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 두라는 것은 더욱 아니다. 내 의지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체념할 줄 알아야 하며, 그럴 때 우리는 도리어 자유로울 수 있다.

공자는 누구보다도 삶을 적극적으로 살았고 인간의 의지를 역설했지만, 그 역시 거역할 수 없는 천명에는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공자는 50세에 천명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고, 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도 있고, ‘일을 행하는 것은 사람이요,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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