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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식당

조양방직 카페 - 신문리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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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에 거주하면서 바다를 보러가기 위해 여행을 갈때는 주로 강원도를 갔었었다. 가끔 보는 강원도의 우거진 숲과 넓은 바다가 다시 나를 강원도로 오게 만들었었다. 하지만 새로 개통한 양양 고속도로가 오가는 시간을 좀 줄여주긴 하였지만 여전히 가깝지 않은 거리였고 당일로 다녀오기에는 부담이 되었었다.

 

그래서 가까운 곳에 바다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하여 강화도를 다녀오게 되었다. 거리상 강원도에 비해 훨씬 가까웠고 1시간 남짓 걸렸다. 당일로 여기저기 둘러보기에도 시간상 부담이 되지 않았으며 돌아오는 길에 조양방직이라는 카페를 방문하게 되어 소개하고자 한다.

 

 

조양방직 카페 

 
조양방직을 네비게이션을 이용하여 찾아가니 도착하여 골목길로 인도하여였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조양방직 전용 주차장은 이미 만차여서 주변의 공영 주차장으로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다행히 주변에 큰 공영주차장이 두 군데는 있는 거 같았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다시 조양방직 카페를 찾아갔다. 현대식으로 멋지게 꾸민 카페일까 생각했는데 담이며 건물들이 모두 마치 쓰러져가는 아주 오래된 것들이어서 놀랬다. 조양방직 카페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었다.
 
 
 

조양방직 역사

 
조양방직은 1937년 홍재용, 홍재묵 형제가 설립한 방직공장이다. 설립 당시 125,000원(현시가 60억 원 내외)의 자본금으로 시작하였으며 700여 평의 2층 건물과 50여대의 직조기를 갖추고 인견과 마직물 염색을 주로 하였다.
그러나 설립 이후 착공에 이르기 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공장 가동 후 1년여가 되는 1939년에 큰 화재가 나서 소실되고 말았고 피해액은 40만원(200억 원 내외)에 달했다고 한다.​
설립 초기에 사장은 형인 홍세묵이 맡고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동생 홍재용이 부사장을 맡아 운영하였다. 하지만 1942년 미쓰비시 산업에서 일하던 이세현에게 공장을 매각하였으며, 이세현은 아들 이현일과 함께 조양방직을 운영하다가 한국전쟁을 거쳐 1958년에 폐업한다.
조양방직이 새 주인을 만난 것은 2017년. 불과 2년 전 일이다. 1년 남짓 보수공사를 거친 조양방직은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보수공사를 했다지만 회색빛 시멘트 건물 외관은 그대로 살렸고, 방직기계가 있던 기다란 작업대는 자연스럽게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테이블이 됐다. 테이블이 얼마나 긴지 음료를 주문한 뒤 받는 진동 벨이 어느 지점부터 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역사는 카페를 들어서고 나니 짐작이 가게 되었다. 조양방직 카페는 이러한 조양방직 공장을 2010에 카페를 꾸민 것이었다. 40대 이상이라면 옛날 어릴적 추억을 상기시킬 만한 많은 물건과 사진 그림들이 있었다. 아~ 옛날에 이런 물건 사용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며 어릴적 기억 속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마당에도 온갖 골동품과 옛날 방직기 등 방직공장에 있던 것들을 그대로 전시해 놓았다.  공간이 워낙 넓은데도 사람들로 붐기였다.

 

 

한참을 둘러보고 커피를 주문할려고 하였는데 주문 대기 줄이 건물 밖 마당까지 이어져 있었다. 가격은 7천원대 인걸로 기억이 난다.

 

둘러보며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모두 올리기에는 너무 많기에 다음에 다시 소개하겠습니다.

옛날 것들도 이렇게 전시하고 꾸며 놓으니 많은 사람들의 쉼터가 되고 옛날을 회상하는 공간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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