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마인드
경영 마인드란 효과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나 지혜를 적용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회사마다 추구하는 경영 마인드가 있다.
일본의 마쯔시다의 경우 경영 마인드는 경영 이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마쯔시다의 경영 이념을 다음과 같다.
“기업의 목표는 질 좋은 제품을 값싸게 많이 만들어 공급함으로써 사회에 공헌하는 것이다”
“이윤은 사회에 공헌한 대가로 오는 결과인 것이지 목표가 아니다.”
“제조업자는 자신들의 제품이 최종 소비자에 의해 폐기될 때까지는 책임에서 면제될 수 없다.”
“실패하는 사업은 잘못된 경영 때문이다. 실패의 원인을 불운이나 불리한 환경 또는 좋지 않은 때로 돌리지 말라.”
“사업욕이란 자제할 줄 모르는 것이다. 너무 멀리 갔으면 다시 돌아올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기업이 경영을 하면서 추구하는 가치나 목적은 경영 마인드에 의해 좌우된다.
경영 마인드가 옳고 그른지에 따라 경영의 운명이 좌우된다. 다음은 경영 마인드에 따른 성공사례와 실패사례에 대해 살펴보겠다.
1. 성공사례
1) 인텔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인 미국의 인텔은 직원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기 위해 개방형 회의방식을 도입하고 있다.
특히 이 회사의 《Cognitive Meeting》에서는 모든 참석자들이 동등한 자격을 보장받고 있으며 발언에 정해진 우선 순위도 있다.
원칙을 중심으로 회의가 진행되며 특별한 지정석이 없기 때문에 누구든지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주제도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 또한 일단 발표된 의견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비판을 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의견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며 서로 비판할 경우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 저해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회사는 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계속 수렵되고 있고 이를 경영에 적극 반영하여 성과를 올리고 있다.
이 회사의 모토 중에는 ‘Have Fun!'이라는 것이 있다.
즉,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 일과가 끝나면 직원들은 자유롭게 모여 파티, 낚시, 영화관람, 레크리에이션을 즐길 수 있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으며 여가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사내 커뮤니케이션 설비투자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인텔의 경쟁력은 기술력에서 나오고 있고 기술력은 결국 인적 자원에서 창출된다는 인식 하에 교육훈련의 강화, 인간존중, 창의성에 대한 격려, 스트레스 해소와 즐거움을 주는 프로그램의 개발을 중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초 일류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 마이크로 소프트
빌 게이츠가 19세 때 대학교를 중퇴하고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지금 소프트 업계에서 제왕으로 우뚝 서 있다.
이 회사의 장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과거의 낡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
둘째, 컴퓨터 기초에 관한 한 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는 점이다.
이 회사는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91년 10월 시애틀 킹덤 체육관에 사원총회가 열린 적이 있다. 이 때 가죽점퍼 차림의 남자 아홉 명이 오토바이를 타고 입장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바로 빌 게이츠 회장이었다. 이 때 확성기에서 울려 퍼진 말은 ‘두목입장’이었다. 그 때 전 사원은 휘파람을 불면서 열렬히 환호했다.
3) 델타항공
미국의 델타 항공사는 오늘날 아메리칸 항공이나 유나이티드 항공사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항공사로 성장하였다. 이 회사는 직원들의 동료애와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하다. 이 회사는 가족적인 분위기를 중시하고 있기 때문에 종업원들을 employer(고용원)이란 표현 대신 personal(직원)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직원들의 경조사를 지원하는 전통을 확립해 놓고 있다.
따라서 ‘조종사의 천국’이라는 말을 듣고 있으며 합병에 따라 타 항공사에서 전직되어 온 직원들조차 ‘델타가족’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이 회사가 다른 항공사보다 인기가 좋은 다른 이유는 52년부터 취해온 ‘무해고 정책’ 때문이다.
이 정책은 그동안 회사가 고도성장을 해 온 탓도 있지만 92년 중반 항공업계에 대 타격을 받은 불황기에서도 임시적 사원을 약간 줄였을 뿐 정규직원은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회사의 경영이 어려울 때는 가장 먼저 임원들이 자신의 봉급부터 깎는다.
이 회사는 평소 급여가 다른 항공사보다 높은 편이며 사원들도 최고의 보수를 받는다. 그러나 즉시 높은 사람부터 급여를 줄여서 대응하고 있다.
이 회사의 또 한 가지 매력은 누구나 경영층으로 승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수석 부사장 중 3명이 수습사원에서부터 올라온 사람들이고 부사장 18명중 11명이 말단 사원에서부터 출발한 사람들이다.
“오늘 말단으로 채용된 사람이 다음에 회장이 될 수 있다. 안 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것이 이 회사 직원들의 사고방식이다.
이 회사의 직원들은 회사의 범퍼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 이유는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실제로 차가 사고를 당했을 경우 델타가족이라면 누구든지 달려와서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써오던 ‘인화’라는 말을 버리고 ‘무한경쟁’ 그리고 ‘책임경영’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적인 초일류 기업들은 인화와 동료애를 강조하고 있으며 종업원들이 직장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최대한 인간적인 배려를 하고 있다.
2. 실패사례
1) 대우자동차
한국 최초의 자동차 제조회사는 1962년 1월 일본 닛산자동차와의 기술제휴로 세워진 새나라자동차공업(주)였다. 이 회사는 1968년 11월에 신진자동차고 이름을 바꾸었고, 1972년 6월에는 미국 제너럴 모터스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면서 GM KOREA로 다시 회사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주식의 50%를 보유한 한국측 대주주의 자금난으로 인하여 그 지분이 한국산업은행으로 넘어가고, 나머지 50%의 지분을 보유한 GM이 경영을 도맡았다.
1976년 11월에는 회사명칭이 한국 국민정서에 좋지 않다 하여 새한자동차로 다시 바뀌었다. 1978년 7월에는 당시 수출재벌로 성장한 대우실업(주)이 산업은행의 지분을 전량 인수하면서 경영에 참여, 1983년 1월에는 회사이름을 대우자동차(주)로 다시 바꾸었다. 이렇게 소유와 경영 주체의 잦은 변동이 이어지면서 회사의 이름도 5번이나 바뀌는 동안 제품의 시장점유율도 동요하기 시작했다.
1973년까지 이 회사는 자동차의 선발메이커로서 한국에서 5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유지해 왔으나 1974년 현대자동차(주)가 ‘포니’를 개발하여 도전해 오면서 1위 자리를 그에게 넘겨주게 되었다. 1978년 대우가 경영에 참가하면서 이 회사는 신제품개발과 해외시장 개혁을 통한 규모확대의 성장전략을 추진하려고 하였으나, GM은 반대입장을 견지했다. GM은 그들 글로벌전략의 일환으로 GM에 저가 차를 공급하기 위한 생산기지로서 대우자동차에 투자한 것이었다.
일개 자회사가 본사의 글로벌전략과 충돌하는 것을 GM은 원치 않았고 따라서 대우자동차의 시장확대나 기술혁신, 신차종개발등 장기적 성장전략에 부정적이었다. GM과 대우가 각각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동수의 이사진을 구성하여 운영하는 대우자동차의 이사회는 주요 의사결정에 임할 때마다 진통을 겪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경영자들은 주요 서류를 모두 GM을 위해 영어로 옮겨야 했으며, 이 일만 해도 회사업무의 신속한 진행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후발주자인 현대자동차가 대우보다 2~3배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데도 대우자동차는 GM과의 이견으로 인하여 신제품개발과 설비투자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여 성장은 고사하고 현상유지도 어려웠다. 이런 상황이 1990년대까지 계속되면서 대우와 GM이 결별해야 한다는 대우측의 생각은 굳어져 갔다.
이렇게 대우자동차가 사내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동안 사외의 경영환경도 점점 복잡해졌다. 1973년과 1979년의 오일쇼크에서 회사가 회복도 되기 전인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 전반에 걸쳐서 반미, 반정부의 정치적 성향을 띤 운동권이 노동현장으로 잠입했다. 대우자동차는 경인지역에 위치한 최대의 기업체로서, 미국을 대표하는 GM이 출자한 회사라는 지역적․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재야노동운동단체들이 노동자의 의식개혁을 지도하려는 표적업체가 되었다.
특히, 경인지역 노동운동의 중심세력인 인천노동운동단체협의회, 약칭 인노협을 위시하여 제야노동운동단체가 대우자동차의 노조를 막후에서 조종하기 시작했다. 1984년 8월 위장취업자 문제로 발단이 된 노사분쟁 이후 1991년까지 대우자동차에는 노사분규가 연례행사처럼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한 해의 임금협상이 타결되고 노사분규가 끝나게 되면 경영진은 무기력해진 생산라인을 정상궤도로 회복시키기 위해 전력해야 했다. 그러다 보면 품질개선이나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력을 채 시작하기도 전에 세월은 흘러 또 다시 다음 해의 분규가 시작되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 물려 회사의 경영진은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도모할 시간을 내기도 힘들었다. 노사분규로 회사의 이미지가 실추되자 판매는 곤두박질쳐서 대우가 만든 차는 소비자의 냉담한 반응 속에 팔리지 않고 재고로 누적도 됐다. 재고 누적은 곧 공장에 영향을 미쳐 조업중단이 잇달았고, 어느 누구도 대우자동차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의 상황을 대우자동차의 한 중역은 다음과 같이 회상하였다.
“생산현장은 계속되는 노사분규로 질서가 무너져 업무의 기본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기계는 돌아가고 있는데 그 옆에서 잠을 자는 사람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하는 사람들로 어수선했고, 생산현장은 감독자들의 관리능력을 벗어나 통솔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제품의 품질약화로 이어져 고객의 불만은 쌓여 갔으며 1990년 에스피로, 1991년 프린스의 개발과 판촉에도 불구하고 판매는 점점 줄어들어, 1992년에는 1교대로 공장을 운영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1교대 운영에도 불구하고 판매부진은 재고를 계속 증가하여 공장 내에는 완성 차를 세워둘 장소가 없어서, R&D를 맡은 직원들(연구원)까지 동원하여 전국에 산재해 있는 대우계열사 소유의 부지로 차량을 옮기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30여 년 동안 소유와 경영 주체의 잦은 교체 탓으로 관리직에는 복지부동, 보신주의 가 만연하고 있었고, 사무생산성도 계속 하락하면서 이직률은 경쟁사의 2배에 달했다.
GM도 한국에서 계속되는 노사분규와 인건비 상승의 결과 GM을 위한 저가차 생산기지로서 대우자동차에 대한 매력을 잃고 있었다. 결국 대우는 GM과 상의 끝에 1991년 10월 GM이 가지고 있던 지분 50%를 전량 인수하고 14년 간의 합작관계를 청산하기로 합의를 보았다. GM과 결별함으로써 경영상화를 위한 첫 과제를 해결한 대우의 다음 과제는 회사의 노사관계를 정상궤도 위에 올려놓는 일이었다.
1992년 대우자동차는 종업원의 의식개혁과 참여를 호소하는 개혁운동을 NAC(New Automotive-Concept)라는 이름으로 전개했다. 차가 팔리지 않아 조업이 단축되던 상황이어서 모두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NAC운동에 대한 생산적 근로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고, 서서히 의식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뒷날 직원들은 “그때 회사의 방침에 반기를 드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회사는 확고한 기본과 원칙을 제시하며 노조를 설득했고, 노조도 그 동안 자기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을 냉정한 시각으로 반성하는 성숙된 의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노사간에 분규가 완화되면서 관리직 직원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제품의 불량률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이 과거의 시장점유율을 되찾아 줄 수는 없었다. 노사분규 당시 사보타지로 인한 제품의 품질 악화, A/S과정에서 소비자들이 겪는 불편과 불친절 등이 소비자의 불만으로 누적되면서, ‘주고받음’의 신뢰관계는 회복불능수준으로 추락했다.
용수철의 탄성이 어느 한계까지는 복원 가능하지만, 탄성의 한계를 넘어서면 원상회복이 불가능해지는 것 같이, 국내 3위로 떨어진 매출액, 20% 이하로 줄어든 시장점유율의 회복은 사실상 어려웠다. 시장점유율이 손익분기점에도 이르지 못하는 상황에서 회사는 노사분규 발생 시에 입게 되는 막대한 손실이 두려워서 적정선 이상의 급여인상을 허용함으로써 회사의 재정형편은 계속 악화되었다.
이런 가운데 세계화의 물결이 일자, 대우자동차는 해외투자에 사운을 걸게 되었고, 이것이 1997년 IMF 구제금융의 악운을 맞게 되면서 대우자동차는 채권단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결론적으로 대우자동차의 비운은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된 노사분규가 소비자의 신뢰상실로 이어졌고, 이것이 시장점유율을 손익분기점 이하로 추락시킨 데 기인한다. 기업과 소비자 사이에 ‘주고받음’의 관계가 파괴된 결과이다.
나의 생각
경영 마인드는 기업 뿐만 아니라, 그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이 가져야 할 공통된 마음가짐이다.
한 기업의 경영 마인드가 바뀌면 그 기업이 나아가는 방향이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경영자는 그 기업의 현실에 맞는 경영 마인드를 가지고, 나름대로의 경영 철학으로 소비자의 입장에 서서 운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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