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수용소에서
살다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일에 직면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평생 그러한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세상 사는 일이 어찌 뜻대로만 되겠는가
나에게도 그러한 일이 2년 전에 있었고 아직도 진행중이다. 한참 마음이 힘들 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남의 고통에서 나의 처지를 위안 삼는 다는 것도 옳지 않은 거 같다. 하지만 그때는 아 저렇게 극한의 역경을 겪은 사람도 있구나 하고 생각한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빅터 프랭클은 극한의 고통에서 의미를 찾을려고 하였고 이러한 노력이 역경을 이겨내는 역할을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며 마음에 새길 글들이 있어 소개한다
1. '죽음의 수용서에서' 내용
《죽음의 수용소에서》(독일어: …trotzdem Ja zum Leben sagen: Ein Psychologe erlebt das Konzentrationslager, 영어: Man's Search for Meaning)은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인 빅토르 프랑클이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홀로코스트 동안의 기억들을 종합하여 1946년 써낸 책으로, 1991년 미국 의회도서관과 Book of the Month Club이 공동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이 책은 미국에서 나온 10권의 영향력 있는 책중 1권으로 선정되었으며[1], 1997년 그가 사망했을 때, 이 책은 24개 언어로 1억 권이 팔린 것으로 추산되었다.
수용소에서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야 가장 잘 사는가를 저자는 고민을 하였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수용소 밖에서만의 희망을 보았고, 안에서는 절망을 느꼈지만, 저자의 생각은 안과 밖을 동일시하였다. 그 결과 저자는 하루하루의 삶을 정제되고 계획된 시간으로 채웠다.
수감자의 반응은 1단계는 수감생활이 갖는 고통의 충격을 갖게 된다. 전혀 겪어보지 못한 고통을 느끼면서 괴로움의 시간을 갖는다. 2단계는 적응의 단계이다. 일단 수용소안에서의 생활이 몸에 적응이 되면, 그리움, 혐오감, 무감각의 상태가 이어지게 된다. 종교심을 갖는 것이 매우 도움이 된다.
“ 인간의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리고 사랑
은 죽음을 넘어서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이다 ”
제3단계는 석방이후에 경험한다. 그가 자신의 집의 문을 열었을 때, 아무도 그를 기다려 주지 않자, 그는 삶의 의미를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되새긴다.
책 마지막부분에는 로고테라피에 대해서 설명한다. 그것은 로고스인 말씀 또는 의미와 테라피인 치료의 합성어이다. 즉, 의미로 치료한다는 뜻이다.
(1)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하면 할수록 그것으롭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이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이 원하는 대로 확실하게 행동할 것을 권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얘기하건대 언젠가는!- 정말로 성공이 찾아온 것을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성공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 지 아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도 참고 견딘다."
-니체
"샤워할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들은 우리가 벌거벗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는 이제 벌거벗은 몸뚱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심지어는 털 한 오라기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그 동안의 삶과 현재를 연결시켜 주는 물건 중 과연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안경과 벨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벨트는 나중에 빵 한 조각과 바꾸어 먹고 말았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인간을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 주십시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해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젤르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방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어떤 사람도, 어떤 운명도, 그와는 다른 사람, 그와는 다른 운명과 비교할 수 없다.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으며, 각각으 상황은 서로 다른 반응을 불러 일으킨다.
때로는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그에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행동에 들어갈 것을 요구할 수도 있다.
반면에 어떤 때에는 더 생각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때로는 주어진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가야할 때도 있다.
각각의 상황들은 각각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갖는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2) 삶의 의미
"삶에서 지치게 되는 각각이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로고테라피에서 이렇게 책임감을 강조한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3)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얘기하겠다.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밴 제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로고테라피 이론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노력을 인간의 원초적 동력으로 보고 있다.
내가 로고테라피를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의 원칙이나, 아드리안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불리는 권력에의 추구와 대비시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3) 정신분석과 로고테라피
정신분석:정신분석을 하는 동안 환자는 침대에 누워서, 의사에게 때로는 하기 거북한 말을 해야 합니다.
로고테라피: 로고테라피를 받는 동안 환자는 똑바로 앉아서 의사로부터 때로는 듣기 거북한 말을 들어야 합니다.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로고테라피는 이렇게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치료법이다.)
말하지만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
로고테라피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 형성과 송환기재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집중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실제로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게 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렇게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도록 만드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는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른 도움이 된다.
(4)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본증적인 욕구를 2차적으로 합리화시키기 위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자신의 의지를 충족시킨다는 의의를 갖게 된다.
(5) 실존적 좌절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이것을 로고테라피에서는 '신존적 좌절'이락 한다.
여기서 '신존적'이라는 단어는 다음의 세 가지 의미로 쓰일수 있다.
1) 존재 그자체, 즉 인간 특유의 존재방식
2) 존재의 의미
3)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즉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6) 누제닉 노이로제
누제닉 노이로제는 욕구와 본능의 갈등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 원인 중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절망도 실존적 고민이지 정신질환은 아니다.
의사는 화자의 실존적 위기를 통해 그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 주는 것을 그 과제로 삼고 있다.
(7) 정신의 역동성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노력이 마음의 평온을 가져오기보다는 긴장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면의 긴장은 정신건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취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사람들은 수감자 중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그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 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 나는 정신건강에 대해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성취해야 할 삶의 잠재적인 의미를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되어야 할 이미가, 그리고 다른 극에는 그 의미를 실현시켜야 할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이 실존적 역동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효력이 있다.
낡은 아치를 튼츤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들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심리요법가는 삶의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마음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삶의 의미를 찾도록 하는 것이 환자에게 유익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얘기했다.
2. 저자 - 빅터 프랭클
빅터 프랭클 [ Viktor Frankl ]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태계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서, 실존주의 치료의 하나인 의미치료를 창시하였다.
출생-사망 : 1905 ~ 1997
1905년 3월 26일 오스트리아 빈 레오폴트슈타트의 유태인계 공무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23년에 비엔나 대학에 입학하여 신경과와 정신과를 전공하면서 우울과 자살에 대하여 연구하였고 이후 실존주의 심리학인 의미치료를 발전시켜나갔다.
1933년에서 1937년까지 비엔나의 슈타인호프 정신병원에서 신경과와 정신과의 수련을 받았고, 자살 연구를 담당하면서 3,000명 이상의 자살 위험이 있는 여성들을 치료하였다. 2차 세계대전 후 비엔나 종합병원 신경과에서 근무하면서, 1948년 《무의식의 하나님》이라는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55년에는 비엔나대학에서 신경과와 정신과 정교수가 되었고, 이후 하버드대학교, 서던 메소디스트 대학교, 피츠버그의 듀케인 대학교에서 방문교수직을 역임하였다. 전 세계에서 세미나와 강의를 진행한 그는 29개의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또 사회적인 활동도 병행하였는데, 1924년에 오스트리아 전역에서 진행된 ‘사회민주주의청년운동’의 대표가 되었고, 의대에 재학했던 1928년부터 1930년까지 고등학생들을 위한 무료 정신 상담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초기 프로이트와 아들러에 의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독자적인 연구를 진행하였다. 빅터가 연구하고 제안한 의미치료는 그의 출신과 성장환경, 시대 배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유태인이었던 빅터는 가족들과 함께 나치 강제수용소로 이송되었으며 가족 대부분이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직계가족 중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는 그와 호주로 이주한 여동생 스텔라(Stella)뿐이었다. 1942년 나치에 의해 유대인 거주지역의 한 곳인 체코의 테레친 게토로 이송된 프랑클은 정신과 의사로서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살피는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수용된 사람들의 정신적 충격과 슬픔을 완화하고 도움을 주기 위한 단체를 조직하고 자살 예방에도 힘을 썼다. 1944년에는 아내 틸리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이송되었으며, 이후 다시 다카우 수용소로 옮겨져 5개월간은 강제 노역을 하고 1945년 3월부터4월 27일 미군에 의해 해방될 때까지는 의사로서 근무하였다.
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그가 2차 세계대전 전부터 발전시켜온 의미치료에 더 많은 확신과 영감을 주었다. 극한의 상황을 경험하면서 그는 수용소 안에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는 사람들과 반대로 절제되지 않고 무질서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와 의미 추구가 중요함을 강조하게 되었다.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그의 책은 1946년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은 살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심리학자의 강제수용소에서의 경험』으로 출간되었고, 1959년 영문판 『죽음의 수용소에서 실존주의로(From Death-camp to Existentialism)』으로 번역되었다. 이후 다시 제목을 바꾸어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으로 출판되었다.
심리학과 정신의학, 신학 분야에 대한 공로로 많은 상을 수상하였으며, 대표적으로 1985년 미국심리학회(APA)에서 수여하는 오스카 피스터 어워드(Oskar Pfister Award)가 있다. 그 밖에도 1956년 대중교육 증진 공로상(오스트리아 교육부), 1995년 비엔나 명예 시민상, 1995년 오스트리아 의사협회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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