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으니 얼마전 읽었던 로버트 그린의 ‘인간 본성의 법칙’의 내용이 생각난다. 인간본성의 법칙에서 언급하는 인간 관계에 있어서 가면 쓰는 것을 죄악시 여길 것이 아니라
이세상의 살아가기위한 하나의 필수 처세술로 말하고 있다. 군주론에서도 이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직하고 자비로운 태도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사자와 같은 군대도 필요하지만 여우와 같은 계략이 있어야 살아남는 군주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여우 와 로버트 그린의 가면은 드러 내놓고 이야기 하기는 왠지 부도덕하다는 생각이 든다. 양심과 도덕만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살아남지 못하고 역경에 부딪힐 것이다. 더 큰 목표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도구적 측면에서 좀 정직하지 않고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그러한 한 것에 의해서라도 살아남아 더 큰 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닐까?
1. 군주론에서 말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
(1)세상에 나온 뒤 수많은 권력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도 이 책을 탐독했고, 『군주론』 연구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무솔리니는 물론 미국 대통령 존 애덤스, 독일의 히틀러, 소련의 레닌, 쿠바의 카스트로 등 많은 권력자가 이 책을 곁에 두었다. 미국 외교 정책의 이론적 뿌리가 『군주론』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 얇은 책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하면서 리더들의 필독서로 읽히고 있을까?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가 크고 작은 나라들로 나뉘어 서로 힘겨룸하면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는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았다. 피렌체 정부의 외교 업무를 담당하며 여러 나라를 방문해 수많은 지도자를 만났고, 공직에서 쫓겨나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기도 했다. 이를 통해 당시 유럽의 정세와 사회상을 낱낱이 파악했고, 정치와 권력의 속성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이처럼 ‘실전에서 살아남은 날것의 지식’을 풀어냈기에, 책을 읽다 보면 리더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냉철한 현실 감각과 생생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2) 정치 현실의 민낯을 파헤칠 뿐만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성찰도 함께 담고 있다. 특히 역사적 사례를 스승으로 삼아 당면한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마키아벨리의 역사관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책에서 고대 그리스-로마와 중세의 통치자들 그리고 역사적인 사건을 자주 인용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역사를 통해 배운 지식만큼 소중한 것은 없다고 강조하면서 군주에게 역사서를 읽으라고 권한다.
(3) 사람의 심리와 삶의 현실, 처세술에 관해서도 이야기한다. 특히 민중의 심리를 적나라하고 직설적인 어조로 비판하며 인간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누군가를 이끌어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고와 지침을 제시한다. 이런 내용은 군주뿐 아니라 국민주권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지식이기도 하다.
(4)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중간한 조치는 결단코 피해야 한다
(5) 변화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혁신자를 공격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전력을 다하여 공격하는 데에 반해서, 그 지지자들은 오직 반신반의하며 행동할 뿐입니다.
그래서 마키아벨리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될 만큼 그냥 자신 스스로가 매우 강해지라고 이야기한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지지자들은 사실 나에게 큰 힘이 되는 아군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6) 사랑을 느끼게 하는 것보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습니다.
(7) 사람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꺼이 통치자를 갈아치우고자 한다. 그런 믿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손에 무기를 들도록 한다. 그러나 이는 곧 자기기만임이드러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험을 통해 이를 깨닫게 된다.
(8) 제아무리 강력한 군대를 거느리고 있는 군주라 할지라도 어떤 지방을 장악하고 통치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곳 주민들의 호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여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든가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그들의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주어야 한다.
(9) 로마 인들은 그 두 세력과의 전쟁을 한동안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또한 로마 인들은 오늘날 우리 시대의 현자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말 즉 “시간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즐겨라”라는 격언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10) 귀족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사람은 민중의 도움으로 군주가 된 사람의 경우보다 그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 훨씬 더 어려움을 겪는다.
(11) 다만 나는 군주가 민중을 자신의 친구로 만들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역경에 처했을 때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결론으로 말하고자 한다.
(12) 죽음이 멀리 떨어져 있는 그때에는 모두가 달려오고 그들 모두 충성을 약속하면서 군주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국가가 시민들을 필요로 하는 역경의 시기에는 그런 시민을 찾기가 어렵다.
(13) 적군을 야전에서 대적하지 못하고 성벽 뒤에 숨은 채 방어만 해야 하는 군주라면
그는 항상 다른 사람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게 내 판단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군주라면 착하지 않을 수 있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착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을 상황의 불가피성에 따라 사용할 수도 있고 사용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한다.
(14) 그러나 악덕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도 좋다.
사실 악덕없이 국가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런 악덕으로 인해 오명을 뒤집어쓰는 일에 개의치 않아야 할 것이다.
(15) 체사레 보르자는 잔인하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그 잔인함으로 로마냐 지방을 질서 있게 만들고 하나로 통일했으며 평화롭고 충성스러운 곳으로 되돌려 놓았다.
(16) 지나치게 많은 자비심 때문에 무질서가 지속되는 것을 방치함으로써 살인과 약탈이 만연하게 만드는 군주보다 본보기로 극소수를 처벌하는 군주가 훨씬 자비로운 군주일 것이기 때문이다.
(17)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럽고 위선적이며 가식적이며 위험은 감수하려 하지 않으면서 이익에는 밝다. 당신이 그들을 잘 대해 줄 동안 그들은 모두 당신 편이다. 그러나 정작 필요할 때 그들은 등을 돌린다
(18) 설령 군주가 사랑을 획득하지는 못하게 된다해도 미움은 피할 수 있도록 자신을 두려움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19) 군주가 경멸당하는 것은 변덕스럽고 경박하고 유약하고 소심하며 우유부단한 인물로 여겨질때이다.
(20) 음모를 꾸미려는 사람은 군주를 살해하는 것이 민중을 만족시킬 것이라고 믿고 일을 저지른다. 그런데 군주를 살해하는 것이 민중의 노여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그런결정을 하는데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21) 어떤 한 통치자의 두뇌 능력에 대해 사람들이 갖게 되는 첫 번째 평가는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봄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들이 유능하고 충성스러우면 통치자는 늘 분별력이 있다는평가를 받을 수 있다.
2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요약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제2 서기관이었다. 그는 14년간의 관직 생활로 폭넓은 경험을 쌓았고, ‘한 번의 폭력으로 더 많은 폭력과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면 군주는 폭력을 택해야 한다’는 《군주론》을 집필했다. 마키아벨리는 냉혹한 정치가라 비난받았지만, 치밀하게 현실적인 논리를 펼쳤던 인물이다.
“인간이란 두려움을 주는 자보다 사랑을 주는 자에게 해를 끼치기를 덜 주저하는 사악한 존재다.”
“폭력은 짐승에게나 어울릴 수단이지만, 군주는 때때로 짐승이 되어야 한다. 곧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교함을 갖추어야 한다.”
나는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니다
유능한 외과 의사는 종종 냉혹하다는 오해를 산다. 치료에 필요하다면 환자의 애원에도 아랑곳 않고 상처를 헤집는 탓이다. 때로는 환자에 대한 섣부른 동정심이 해가 되기도 한다. 의사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의료 기계처럼 냉철한 판단과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환자를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이란 흔히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냉혹한 정치꾼의 권모술수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 마키아벨리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기분 좋아할 권력자는 없다. 하지만 정작 창시자격인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1527)는 결코 권력에 굶주린 잔인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세상의 편견은, 환자를 살리려는 단호한 처치만을 보고 ‘의사는 잔인하다’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보존과 국민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값싼 도덕심과 동정 따위는 때로 던져 버리라고 주장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한번 퍼진 나쁜 소문을 바로잡는 일은 쉽지 않다. 마키아벨리에 대한 편견은 50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마키아벨리는 결코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니었다.
눈을 뜨고 태어난 아이
마키아벨리는 1469년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법률 고문으로 활동했다. 집안 형편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지위 면에서나 평범한 중산층 수준이었던 듯하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40여 권이나 되는 장서를 갖고 있을 만큼 독서에 관심이 많았다. 일일이 손으로 베껴서 책을 만들던 시절, 책값은 무척 비쌌다. 거기다 넉넉지 않았던 가정 형편까지 고려하면 아버지는 상당한 교양인이었으리라. 마키아벨리 역시 아버지의 책을 읽으며 꿈을 키워 갔다.
그렇지만 마키아벨리는 철저한 실무형 인간이었다. 이는 그의 성장 환경에서 비롯되었음 직하다. 많은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마키아벨리로서는 교양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므로, 실제 삶의 현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게다가 그 당시 피렌체의 현실은 꿈이나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기 200여 년 전에 이미 단테1)는 《신곡》에서 피렌체를 ‘아픔을 견디다 못해 침대에서 쉴 새 없이 몸을 뒤척이는 병자’로 비유했다. 그의 조국은 상업적으로만 번창했을 뿐, 영토나 인구로는 약소국에 지나지 않았다. 주변의 영향에 따라 현기증 날 정도로 정권이 자주 바뀌며 혼란에 휩싸이곤 했는데, 마키아벨리 시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말세라 할 만큼 심각했다.
마키아벨리가 아홉 살 때 메디치 가에 대한 쿠데타가 일어났고,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에는 사보나롤라라는 광신적인 수도사가 신정 정치(神政政治)를 세웠다. 다음 해에는 그 역시 사형을 당해 불에 탔다. 한눈팔다가는 당장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세월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자신의 책 《군주론》에서 이렇게 적었다.
인간이란 ‘두려움을 주는 자보다 사랑을 주는 자에게 해를 끼치기를 덜 주저하는’ 사악한 존재다. 정치는 이 같은 인간의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본능을 억제하는 강제 장치다.
마키아벨리같이 혼란한 세월을 보내며 무능한 정부를 몸으로 느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생각이다.
사람들은 마키아벨리가 눈을 뜨고 태어났다고 말한다. 서양의 전기를 읽어 보면, 눈을 뜨고 태어났다는 이야기로 생애가 시작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통 이런 일화는 소크라테스나 볼테르처럼 세상의 본질을 냉철하게 꿰뚫어 본 위인들에게 붙곤 한다. 마키아벨리 역시 자라면서 철저하게 현실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익혔다. 그래서 그에게 이런 전설(?)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피렌체의 제2 서기관
1498년,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제2 서기관으로 임명된다. 이 자리는 지금으로 하면 국무부 차관보 정도의 직위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내세울 만한 경력과 학력이 거의 없던 신출내기 젊은이가 어떻게 중요한 자리에 올랐는지를 놓고 아직도 논란이 많다.
어쨌든 마키아벨리는 매우 유능한데다가 젊은이답게 의욕도 컸다. ‘욕심꾸러기처럼 일을 자꾸 끌어안아서 나중에는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단다. 세상일이란 부산히 움직일수록 더 많이 배우는 법. 그는 14년의 관직 생활을 통해 사소한 행정 업무에서 외교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경험을 쌓았다.
오늘날에도 민감한 외교 사안은 정식 외교관보다는 실무를 맡은 관료들이 사전 조율하는 것이 관례다. 국가 간 공식 접촉이 아닌 실무 차원의 만남이라 외교적인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도 미묘한 외교 문제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았다.
한편, 당시는 피렌체 · 베니스 · 나폴리 같은 상업 중심의 이탈리아 도시들이 몰락하고, 프랑스나 스페인처럼 넓은 국토와 많은 국민을 기반으로 한 국가들이 점점 더 세력을 키워 가고 있었다. 피렌체는 내세울 만한 영토도 군사력도 없었다. 그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외교술이라는 잔머리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시절 프랑스의 고위 관리가 “피렌체인들은 전쟁을 몰라.”라고 했더니, 마키아벨리가 “프랑스인들은 정치를 모릅니다.”라고 맞받아쳤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확실히 베니스나 피렌체 같은 상업 도시국가들은 정치 · 외교적인 잔머리 쓰는 데는 천재적이었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 현실에서 잔머리는 한계가 있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일반적으로 군대를 갖기보다는 용병을 쓰곤 했다. 인구가 적은데다가, 군대를 만들면 그만큼 경제활동 인구가 줄어 국가 수입원인 상공업에 타격을 받는 까닭이었다. 그렇다고 용병이 잘 싸워 준 것도 아니다.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들로서는 목숨 걸고 전투를 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편도 용병, 적도 용병이다 보니 수만 명이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도, 정작 전사자는 말에서 실수로 떨어진 한둘에 그치는 예술 전투(?)가 흔했다.
1500년, 마키아벨리가 속한 군사 위원회는 피사를 공격하기로 한다. 피렌체는 내륙의 상업 도시라 경제활동을 위해서는 항구가 꼭 필요했다. 얼마 전 피렌체에서 독립해 나간 항구 도시 피사를 되찾는 일은 나라의 흥망을 걸 만큼 절실했다. 이 전쟁에서도 용병들이 동원되었는데, 이들 때문에 피렌체는 큰 낭패를 보았다. 피사의 성벽을 무너뜨리고도 시가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철수해 버린 것이다. 단순히 돈 때문에 싸우는 그들로서는 위험 부담이 큰 시가전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결국 피렌체는 용병을 댄 프랑스 왕에게 돈만 날린 꼴이 되고 말았다. 힘이 없었던 피렌체는 사기를 당하고도 프랑스에 감히 항의할 엄두도 못 냈다.
마키아벨리가 국민 군대를 키워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군대는 자기 가족과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이 있을 때만 용맹해질 수 있다. 당연하고 시급한 주장이었지만 그의 ‘국민 군대 창설안’이 실현된 때는 이로부터도 6년이 지난 1506년이었다. 그만큼 피렌체 지도층은 우유부단했고 자신감이 없었다. 어찌되었건 1509년, 농민군이 주축이 된 피렌체 군은 숙원 사업이었던 피사 입성에 성공한다. 마키아벨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던 셈이다.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교함
1502년, 마키아벨리는 체사레 보르자를 만난다. 무섭게 세력을 키워 가고 있던 20대 후반의 젊은이 보르자는 피렌체에 큰 위협이었다. 그의 세력을 무마하려고 파견된 마키아벨리는 그에게서 약육강식인 현실에 맞는 이상적인 군주의 모습을 발견한다. 뒷날 보르자는 마키아벨리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군주론》의 모델이 된다.
보르자는 젊은이다운 혈기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 피렌체 특사인 마키아벨리에게 “당신네 정부는 도대체 마음에 안 들어. 바꿔야겠어.”라며 핀잔을 주곤 했단다. 외교적으로 파문을 일으킬 만한 폭언이었지만, 마키아벨리가 이 말을 듣고 불쾌해한 흔적은 없다. 마키아벨리 역시 조국 피렌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보르자는 냉혹한 인간이기도 했다. 화해의 모임을 갖는다는 핑계로 반란자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뒤 몰살시켰고, 가장 아끼는 부하에게 누명을 씌워 죽여서는 광장에 전시해 국민들의 동요를 가라앉히기도 했다. 끔찍한 일을 거리낌 없이 저지르는 그에게, 마키아벨리는 혐오감을 느끼기는커녕 탄성을 지른다.
통치자가 최고의 목표를 이루고자 한다면 도덕이 항상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 군주가 국가를 지키려 한다면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진실과 자비, 인간애와 종교에 반하여 행동할 필요가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모든 일을 이성적인 대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일 뿐이다. 분명 폭력은 짐승에게나 어울릴 수단이지만, 군주는 때때로 짐승이 되어야 한다. 곧 사자의 힘과 여우의 간교함을 갖추어야 한다. 한 번의 단호한 폭력으로 더 많은 폭력과 혼란을 잠재울 수 있다면 군주는 당연히 짐승의 수단을 택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군주론》의 핵심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덕과 기독교의 전통적인 덕목들을 구분한다. 기독교에서는 겸손과 정직, 동정심과 경건함을 강조한다. 모두 옳은 말이긴 하지만, 군주에게는 이보다는 용맹스러움 · 단호함 · 기민한 판단력 등이 더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속임수를 쓰거나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나쁜 일이다. 그러나 군주는 국민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서는 이런 일도 서슴지 않아야 한다. 숱한 생명이 걸린 군주의 행동에서 중요한 것은 선한 의지가 아니라 좋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단, 군주가 자신을 적들로부터 보호하려면 최대한 도덕적인 인물로 보이게끔 노력해야 한다는 점만 명심하면 된다.
실제로 국가 발전을 위해 인권을 탄압한 나라들이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둔 사례가 적지 않다. 또, 짐승의 수단이 대화만큼이나 빈번한 국제 관계의 현실을 보면, 마키아벨리의 주장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닌 듯싶다.
불행은 위대한 창작의 필수 요소
1512년, 프랑스 군대는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끄는 신성 동맹의 군대에 밀려 이탈리아에서 철수한다. 프랑스의 지원을 받던 피렌체 공화정은 힘을 잃고 교황의 지원을 받는 메디치 가가 다시 복귀한다. 실무자는 공을 세울 때는 뒷전으로 밀리다가 문책을 당할 때는 몸통을 대신할 깃털이 되어 제일 먼저 제거되는 법이다. 마키아벨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옛 정권에 충성했다는 이유로 고문을 당한 뒤 추방된다. 그 이듬해 피렌체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가 즉위하자 그는 특별 사면되지만 공직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위대한 창작에는 약간의 불행이 필수적이라는 말이 있다. 그 뒤 시골 산장에 틀어박혀 지낸 14년은 마키아벨리에게 괴로운 시기였지만, 인류에게는 행운이었다. 《군주론》, 《로마사론》과 같은 그의 대부분의 저작들, 《만드라골라》 같은 유명한 희극 작품들이 모두 이 시기에 쓰여졌다.
《로마사론》, 《정략론》 등을 살펴보면 마키아벨리는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달리 공화주의자에 가깝다. 그는 고대 로마를 이상적인 국가로 본다. 그는 지배자가 존경 받고 명예와 영광을 차지하며 민중의 삶은 사랑과 신뢰로 가득 찬 세상을 꿈꿨다. 이런 세상을 위해서는 법의 지배가 필수적이고, 권력의 부패를 막기 위해서라도 시민들 간의 갈등과 균형이 필요하다. 《군주론》에서 엿보이는 잔인한 군주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국가 수호자의 모습이었을 뿐이다. 그도 법이 지배하는 민주적인 국가를 이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
1520년, 메디치 가는 마침내 쉰한 살의 마키아벨리에게 화해의 손짓을 보낸다. 그는 몇 가지 외교적인 임무를 맡기도 했고 점차 커져 가는 전쟁의 위협에 대비한 성벽 보강 작업 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그의 정치 생명을 끝내는 이유가 되어 버렸다.
1527년, 메디치 가의 후원자였던 교황이 몰락하고 스페인 군대가 진주하자 피렌체는 다시 공화제로 복귀한다. 마키아벨리는 제2 서기관으로 복귀하기를 원했지만, 이번에는 메디치 가의 가신으로 간주되어 선거에서 큰 점수 차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뒤 1527년, 마키아벨리는 쉰여덟 살로 숨을 거둔다. 학자들 가운데는 선거에 떨어진 충격이 그의 요절을 불러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로부터 200년 뒤, 프리드리히 대왕은 《반(反)마키아벨리론》을 써서 정직과 도덕이 정치의 제1 덕목이라고 주장했다. 그렇지만 역사는 프리드리히 대왕을 어느 마키아벨리주의자보다도 기만과 술수에 능했고 폭력적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만큼 마키아벨리는 냉혹한 정치가라 비난받으면서도 그의 주장에 따를 수밖에 없을 만큼 치밀하게 현실적인 논리를 전개했던 인물이다.
삶은 누구에게나 녹록하지 않다. 사람들은 현실과 맞서기보다는 꿈과 환상에 빠지기를 원한다. 하지만 힘들고 잔인한 현실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냉철해져야만 상황은 나아질 수 있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라는 누명을 쓴 채로 지난 500여 년 동안 숱한 비난을 받아온 그의 《군주론》이 오늘날까지도 필독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3.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Niccolò Machiavelli ]
이탈리아의 통일과 번영을 꿈꾸며 새로운 정치사상을 모색한 정치사상가
출생 – 사망 1469.5.3. ~ 1527.6.21.
“군주된 자는, 특히 새롭게 군주의 자리에 오른 자는, 나라를 지키는 일에 곧이곧대로 미덕을 지키기는 어려움을 명심해야 한다. 나라를 지키려면 때로는 배신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잔인해져야 한다. 인간성을 포기해야 할 때도, 신앙심조차 잠시 잊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러므로 군주에게는 운명과 상황이 달라지면 그에 맞게 적절히 달라지는 임기응변이 필요하다. 할 수 있다면 착해져라. 하지만 필요할 때는 주저 없이 사악해져라. 군주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나라를 지키고 번영시키는 일이다. 일단 그렇게만 하면, 그렇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을 했든 칭송 받게 되며, 위대한 군주로 추앙 받게 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1513년에 쓰고 1532년에 출간된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단 그것은 피렌체의 권력자 로렌조 메디치에게 헌정되었고, 마키아벨리의 능력을 선보임으로써 메디치에게 발탁되기 위한 목적으로 씌어졌다고 여겨졌다. 그 ‘목적’은 이뤄지지 않았고, 마키아벨리는 불우하게 살다가 갔다. 그러나 이후 이 책은 수없이 읽히고, 해석되고, 반박되고, 숭배되었다. 그리고 역사를 바꾸었다.
'책과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0) | 2022.09.05 |
---|---|
이순신 한산 - 용의 출현 메인 예고편 (0) | 2022.09.02 |
인간관계론 - 데일 카네기 (2) | 2022.08.23 |
관계는 감정이다 - 노은혜 (0) | 2022.08.23 |
죽음의 수용소에서 - 빅터 프랭클 (0) | 2022.08.22 |